문재인 대통령이 모처럼 최저임금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공개했다.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소상공인·자영업자들 간 간담회를 통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은 2년 연속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으로 인해 온 나라가 북새통을 이룬 뒤 공개된 것인 만큼 세간의 관심을 끌 만했다. 직접적인 워딩은 아니었지만 발언의 골자는 ‘최저임금 인상은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추론하자면 이미 동력을 잃은 듯 보이는 소득주도성장 기조도 계속될 것임을 공언했다고 볼 수 있다.
맥락을 살펴보건대, 문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작심하고 나온 것은 아닌 듯했다. 한 참석자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해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하자 그에 답하는 과정에서 속내를 내비친 것이었다. 문 대통령의 정확한 워딩은 “최저임금 인상은 속도라든지 금액 부분에 대해 여러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길게 보면 결국은 인상하는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향후 최저인금 인상 결정 과정에서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의 의견이 대변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내놓았다. 구태여 먼저 말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고, 표현 또한 완곡했지만 최저임금 인상 기조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만은 매우 강력한 듯 보였다.
![[그래픽 = 연합뉴스]](/news/data/20190215/p179565864463565_743.jpeg)
이날 문 대통령의 답변 내용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지금까지의 최저임금 인상만 해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은데, 그 흐름을 이어가겠다고 했으니 하는 말이다.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을 대하는 민심은 최근 공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지난달 15~17일 전국 성인 1002명을 상대로 올해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묻는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2%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 답한 응답자 비율은 24%에 불과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최저임금의 부작용을 바라보는 문 대통령의 시각이다. 이날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의 후유증이 급속한 인상 자체가 아니라 정책 실행과 보완의 엇박자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최저임금이 먼저 인상되고 보완조치들은 국회 입법사항이라 같은 속도로 맞춰지지 않고 있다”라는 발언이 그 같은 해석을 가능케 했다. 최저임금 부작용의 책임이 국회에 있음을 은연중 내비친 것이란 해석까지 낳을 수 있는 표현이었다.
보다 현실적인 우려는 이날 대통령의 발언으로 곧 시작될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이 기정사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데 있다. 여론이 흉흉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전처럼 큰 폭은 아니겠지만 동결에 대한 소상공인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돼버린 듯 보인다.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이 가져온 부작용은 같은 날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도 앞다퉈 거론됐다. 이 행사에서 최인·이윤수 서강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수단으로 삼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목표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평했다. 이들이 2017년 3분기~지난해 3분기의 기간을 그 이전 4년여 기간과 비교해 분석한 결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실시된 기간 중에 경제성장률과 투자성장률, 고용성장률이 모두 떨어져 있었다. 앞선 기간에 비해 경제성장률은 0.13%포인트, 투자성장률은 5.14%포인트, 고용성장률은 0.16%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을 나타내는 총요소생산성은 0.05%포인트 하락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가 잠재성장률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반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옹호론을 펼치는 이들의 주장은 “장기적으로는 정책 효과가 나타날 것” 또는 “임시직·고용직 감소 등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인지 판단하기 이르다”라는 주장을 주로 펼쳤다. 눈겨여 볼 점은 긍정론·옹호론자들 역시 정책 시행 후 1년 반이 지난 현재 시점까지 효과가 나타났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쯤에서 청와대와 정부에 묻고 싶은 것은 ‘검증되지 않은 실험을 언제까지 더 해야 하는가’이다. 정책 반대론자들도 소득주도성장 개념이 지닌 선의를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감성적 만족이 현실적 만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소득주도성장은 이상적인 경제이론일 뿐이다. 전 국민이 근로소득자인, 내수 주도의 완전고용사회·폐쇄사회에서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게 많은 학자들의 지적이다. 학술대회에서 나온 “임금 상승시 투자와 고용, 생산성 등이 줄지 않아야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효과를 낼 수 있다”라는 최인 교수의 말 또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지닌 명확한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문제 투성이의 정책이라면 그 정책의 중요한 실행방안인 최저임금의 공격적 인상도 당연히 재고돼야 한다. 그러려면 정책 실패에 대한 인정이 선행돼야 한다. 이미 사공 잃은 배 신세가 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두고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정책 실패에 대한 판단은 빠를수록 좋다.
대표필자 편집인 류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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