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정부 시장 개입 정책 실패 우려..."시장에 맡겨야"
[메가경제=주영래 기자] 식품업계를 강타하는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이 점화돼 '번들플레이션', '스킴플레이션으로 확산되자 정부가 가격통제 움직임에 본격 나서는 등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이 제품 가격을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제품의 크기나 중량을 줄인 것을 의미한다면 번들플레이션은 개별 상품보다 묶음 상품을 더 비싸게 판매해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스킴플레이션은 아예 제품 핵심 원료의 함량을 줄인 무늬만 같은 이종 제품을 말한다.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인해 제품 생산원가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자 식품업계에서 이러한 꼼수를 동원하는 현상이 만연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자 기획재정부는 지난 17일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식품업계의 이런 행위에 대해 정직한 판매 행위로 보기 어려운 만큼 이를 중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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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품 진열대를 바라보는 소비자.. [연합뉴스] |
이어 정부는 "이달 말까지 한국소비자원을 중심으로 주요 생필품 실태조사, 제보 등을 진행해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식품업계의 이 같은 행위를 사실상 편법 인상으로 규정하고 소비자물가를 관리하기 위해 소위 '빵 서기관','라면 사무관','커피 주무관' 등을 두고 품목별 물가 관리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사실상 업계를 밀착 관리해 가격 인상을 막아보겠다는 얘기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업계가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양을 줄여 파는 것이 판매사의 자율이라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면서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제품 내용물이 바뀌었을 때 소비자가 알 수 있게 하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물가안정책임관'을 두고 시장 개입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도 'MB 물가지수'를 도입해 주요 생필품 52개 품목을 집중적으로 관리했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정책 시행 3년 만에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12%에 머물렀는데, 반해 MB 물가지수 20.42%까지 급등했다. 정부가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한 부작용의 민낯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식품업계는 정부가 법으로 규제한다면 당연히 따라야 하지만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정부가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원재료뿐만 아니라 인건비, 전기세 등 가격 인상 요인이 높아지고 있어 어쩔 수 없이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낸 것인데 이를 두고 정부가 직접 개입에 나선다면 과거 'MB 물가지수'정책처럼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물가정책은 시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당장은 정부 압박으로 가격을 동결할 수 있지만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한 번에 큰 폭으로 올리거나 용량을 줄일 경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부담으로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업계로부터 나온다.
시민단체는 식품업계가 원가 상승 요인이 떨어졌는데도 ‘꼼수’로 가격 인상을 지속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생활필수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 39개 품목 중 37개 품목의 가격이 평균 8.3%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재료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식품기업들이 원재료와 각종 유틸리티 비용상승을 이유로 가격 인상을 단행하고 있지만 하락기에도 가격 인하는 없어 소비자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빵, 과자, 라면 등의 주요 원재료인 밀가루(소맥분)와 팜유의 수입 가격은 전년 동기대비 큰 폭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밀 가격은 2023년 3분기 1kg당 472.4원으로 전 분기 대비 11.9% 하락했으며, 같은 분기 대비 24.2% 하락했다. 밀 가격이 가장 높았던 2022년 4분기 630.6원과 비교해도 25.1% 내려간 상황이다.
팜유는 2023년 3분기 기준 943.8원으로 전 분기 대비 10.5% 하락, 전년 같은 분기 대비 36.4% 하락했다. 팜유 가격이 가장 높았던 2022년 2분기 1806.5원과 비교하면 47.8% 정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원재료 인한데오 식품업계는 가격 인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어 소비자 물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면서"일부 식품기업은 소비자 가격을 지속해서 올려 자기 잇속만 챙기고 있는 만큼 기업 스스로 가격 안정화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국민들의 체감 물가 부담이 내려갈 수 있도록 노력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업계 스스로 '슈링크플레이션'을 역행하는 상품을 출시해 눈길을 끈다. 편의점 GS25는 중량은 늘리고 가격은 낮춘 '유어스면왕'을 출시했다.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유사 NB 용기면(소컵 기준, 86g) 대비 중량은 22% 늘리고 가격은 1000원 아래로 낮췄다.
GS25는 "장기화한 고물가 안정에 기여하고자 물가안정 상품인 '면왕' 기획에 나섰다"면서 "물가 안정의 실질적 수혜 범위를 늘리고자 대표적 서민 음식인 라면을 우선 기획 상품으로 선정해 출시하게 됐다"고 출시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슈링크플레이션과 관련한 규제를 강화하는 움직임도 관측되고 있다. 브라질은 제품 용량이 바뀌면 소비자에게 이를 6개월간 알리도록 하고 있다. 독일과 러시아는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대형마트인 까르푸나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 '네토'는 용량을 줄인 제품에 대해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스티커를 물건 판매대에 부착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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