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SK케미칼·애경에 다시 날아든 청구서…가습기살균제 배상체계 30년 만에 뒤집혔다

김민준 기자 / 기사승인 : 2026-06-01 13: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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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료사 분담률 25%→45% 상향…체납 기업 명단 공개·가산금 부과
옥시·롯데는 유죄 확정…SK케미칼·애경은 법정 공방 속 책임 부담 확대

[메가경제=김민준 기자]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이 30여년 가까이 이어온 배상 투쟁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정부가 피해구제 중심 제도를 국가 주도의 배상체계로 전면 개편하면서 기업 책임을 보다 강하게 묻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특히 원료 사업자의 분담금 비율을 대폭 높이고 체납 기업 명단 공개 제도까지 도입하면서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에 관여한 기업들의 부담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가습기살균제 배상체계가 개선된다. [사진=챗GPT]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4월 전부 개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시행령·시행규칙 전부개정안을 오는 62일부터 713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1일 밝혔다. 개정 특별법은 오는 108일부터 시행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국내 최악의 생활화학제품 안전사고로 꼽힌다. 1994년부터 시중에 판매된 가습기살균제는 '가족 건강을 지켜주는 제품'으로 홍보됐지만, 실제로는 독성 물질이 호흡기를 통해 직접 인체에 유입되는 구조였다.

 

문제는 제조·판매 기업들이 흡입독성 시험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고, 정부 역시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사건은 2011년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임산부 환자들이 잇따라 입원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 가습기살균제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고 정부는 제품 수거와 판매 중단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이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였다. 정부에 공식 접수된 피해자만 7999, 사망자는 1893명에 달한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전국적으로 약 95만 명이 건강 피해를 입고 최대 2만 명이 사망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는 옥시레킷벤키저, SK케미칼, 애경산업, 롯데마트 등 다수 기업이 연루됐다. 판매업체 27, 원료 공급·제조업체 20곳이 가습기살균제 생산·유통 과정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기업 책임 규명과 피해 배상은 수십 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피해자들은 국가 지원과 별도로 기업들과 개별 협상을 벌여야 했고, 형사재판 결과에 따라 배상 논의가 좌우되는 구조가 이어졌다.

 

실제로 기업별 법적 책임도 엇갈렸다. 옥시가 판매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제품은 PHMG 성분의 위험성이 인정되면서 신현우 전 대표 등 관계자들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유죄가 확정됐다. 이후 옥시는 공식 사과와 별도 보상 절차를 진행했다.

 

롯데마트 역시 자체브랜드(PB) 가습기살균제 판매와 관련해 형사 책임을 인정받았다.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 등 관계자들은 안전성 검증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반면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을 둘러싼 법적 판단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SK케미칼은 CMIT·MIT 성분 원료를 제조·공급했고, 애경산업은 이를 사용한 '가습기메이트'를 판매했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은 주의의무 위반 책임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다만, 대법원은 지난해 원심을 파기환송하면서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기업 책임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장기화되면서 피해자 배상 역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는 이번 특별법 개정을 통해 이러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기존 피해구제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 배상심의위원회로 격상된다. 산하에는 배상지원단과 전문위원회가 신설돼 배상 심의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게 된다.

 

피해자 지원 전담기관인 '가습기살균제피해관리센터'도 새롭게 설치된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지정 운영기관을 맡아 의료·법률 상담과 피해 지원 업무를 수행한다.

 

배상 기준 역시 처음으로 법령에 명문화됐다. 사망 피해자 유족에게는 유족배상금과 장례비, 위자료가 지급된다. 건강 피해자에게는 치료비, 간병비, 휴업손해, 장해배상금, 위자료 등이 지급된다. 배상액은 피해 정도와 소득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배상심의위원회가 결정한다.

 

피해자 편의도 확대된다. 기존 피해 인정자는 소득 증빙자료만 추가 제출하면 되며,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은 건강보험공단과의 자료 연계를 통해 별도 청구 없이 처리된다.

 

학생 피해자에 대해서는 희망 중·고등학교 우선 배정 제도가 도입되며, 대학생 피해자에게는 국가장학금을 활용한 등록금 지원이 최대 8학기까지 제공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배상 재원 조달 방식이다. 개정안은 원료 사업자의 분담금 비율을 기존 가습기살균제 사업자 분담금의 25%에서 45%로 대폭 상향했다. 정부는 원료 공급 단계의 책임을 보다 강화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는 기업에는 체납액의 1000분의 1에 해당하는 가산금을 매일 부과한다. 체납 사실은 관보와 관련 정보시스템에 공개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도 개편이 단순한 피해 지원 확대를 넘어 국내 화학·생활용품 산업 전반의 책임 경영 기준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원료 사업자 책임이 대폭 강화되면서 향후 SK케미칼 등 원료 공급 기업들의 부담도 이전보다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조현수 기후에너지환경부 환경보건국장은 "특별법 시행일까지 하위 법령 개정을 빈틈없이 완료해 피해자와 유가족의 배상 심의 절차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30여 년 동안 이어진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수많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다. 이번 특별법 개정이 '구제'를 넘어 실질적인 '배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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